아침에, 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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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오면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추억을 남겨주신다며

거실 한 구석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셨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도 작은 모조 나무 하나 구하시어

소박한 장식들을 매달면,

꼬물꼬물 어린 아들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솜 뭉치 몇 조각 얹어놓고.

늦은 퇴근 후, 아부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짝이 전구들을 감으셨다.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온 가족이 모여 점등식을 경건하게 거행하는 순간,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한 이십년 후.

베드로 광장앞의,

실제 사람 키보다 큰 인형들로 꾸며진

거대한 구유 앞에서

어른의 마음으로 다시 황홀하였었다.

 

이천년 전의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 사실감 때문만은 아니라

그 광경을 함께 느끼고 싶은 누군가와

언제고 꼭 다시 찾아오리라는

막연한 다짐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십여년의 바티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신

이모집, 거실의

또 다시 황홀하게 차려진

아기 예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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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D200 / AF 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