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훈련병 시절






아마도

훈련소 입소하자마자 얼마 지난 후,
입고 갔던 옷가지를 보내온 소포 속에 있던 사진인듯 싶다.
벌써 꽤나 오래 전 이야기지만.

입대하기 며칠 전이었나, 아니면 하루 전이었을까.
그날 새벽,
술이 그리 세지 못한 녀석이 혀가 풀린 목소리로 전화를 했었다.

'형, 나 좀 데리러 와줘'

세상을 향해, 허공에 대고 주먹을 날리던 시절에도
술 먹고 데리러 와 달란 적은 없던 그 녀석 이기에 순간
'먼 일 있지' 싶었다.

파자마차림으로 뛰어 나가 본 큰 길에는
눈 두덩을 움켜 쥔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고.

애써 묻진 않았다.

아마도
군에 가기 직전에 이 땅의 남자들이 한 번씩 느꼈을
그 무언가가 가슴속 저 밑에서부터 뒤 흔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식구들 모두 한참 힘들때
버려두고 떠나 있어야 한다는 미안함을 참지 못했을 수도 있었고,
그나마 걱정 덜어주려고
의연하게 훈련소로 향하고 싶었던 다짐의 한계가 왔을 수도 있었고,
혹은,
혹은,
그렇게라도 큰 형에게 어리광을 피움으로써
유년 시절을 마감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훈련소로 들어가는 뒷 모습에 대고
끝까지 웃어 보이려 입술을 깨물었던 큰 형이나,
열 댓 바늘을 꿰매도록
피를 철철 흘리며 누군가와 다툴만치로
마음을 꾹꾹 다잡아 두었던 동생이나.

맛있는 안주에
마음 편하게 소주 한 잔 사주고 싶었던 입대 전 날의 아쉬움은
제대 할 때나 그렇게 한 번 두 형제 코가 비뚤어보자 미뤄 둔 것이
벌써 몇 년 이다.



2005.07.07